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개인적인 한줄평과 별점 (스포 X)

2022. 3. 24. 15:45현재개봉작 별점과 한줄평

행복과 작별에 대한 잔인하고 우아한 시를 영화화하다.

 

별점 : 4 / 5

(제 기준 3.5점이 중간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참으로 궁금했다.

포스터만 봤을 때, 뭔가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내 취향에 잘 맞는 영화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근데 그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영화를 잘 안보다가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마지막 딱 한 상영시간에 겨우 맞춰서 영화를 관람했다.

(시작 시간에 겨우 맞춰가려고 엄청나게 뛰어갔던 것은 비밀)

영화는 필자의 취향에 맞는 그런 아름답고 편안한 분위기의 영화였지만,

생각보다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다.

'사랑'과 '행복'의 정의

'이별'과 '작별'의 차이

 

필자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키워드는 총 4개이고 이것을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행복'

'이별'과 '작별'

영화를 보며 필자는 이 4개의 감정에 대한 간단한 소견을 써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핵심 사건은

'그레이스'와 '에드워드' 이 노부부의 헤어짐이다.

평소 감정에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그레이스'에게 지친

평소 감정을 절제하는데 익숙하고, 조용하고 진중한 성격인 '에드워드'는 떠남을 고한다.

성격의 차이는 있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던 그레이스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큰 충격을 받고

에드워드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달라며 애원하지만, 

이미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혼외관계를 맺고 있던 에드워드에게

더 이상 그녀를 향한 사랑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별거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들 '제이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로 만나면서

그들의 진실한 속내, 생각을 들으며 그들을 이해함과 동시에 위로한다.

 

이 과정에서 먼저 우리는 사랑과 행복에 대한 개념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레이스는 에드워드와 제이미를 사랑하고 있으며, 단란한 가정을 갖는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여성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런 그레이스와 있으며 행복하지 않다.

자신이 하는 일을 아내인 그레이스가 마뜩잖게 여긴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남편상에 자신을 끼워맞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녀와 행복했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현재에 와서 오랜 기간 자기정체성이 없어졌다고 느끼던 에드워드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여성을 만나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글쎄... 필자는 이 둘 모두의 마음에 참으로 공감이 되었다.

그레이스가 생각하는 사랑과 행복

에드워드가 생각하는 사랑과 행복

이 둘은 분명 같은 것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르다.

누구의 관점도 틀리지 않다.

다만 둘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안타까운 헤어짐이 있었을 뿐.

서로의 감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가끔씩은 격렬하게 다투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그레이스.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기보단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과 행동을 하며

이성적인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이해받기를 바라는 에드워드.

어쩌면 이 둘은 시작부터 어긋나 있던건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차분히 따라가며 사랑과 행복에 대한 두 남녀의 관점의 차이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무엇보다  영화를 보며 '이별' '작별'의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초반에 에드워드가 그레이스가 고한 헤어짐은 이별이다.

에드워드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헤어짐을 준비하며 각오를 했겠지만,

그레이스 입장에서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인 것이다.

아무리 다소 히스테릭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레이스라 할지라도

본인이 진심을 다해 사랑한 사람으로부터 갑자기 이별을 선고받는다면 얼마나 충격을 클까

이것이 우리가 이별에 가슴 아파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보통 어떠한 일을 하기에 앞서 그것을 준비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우리는 그 일을 더욱 쉽게 처리하고 다룰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별이란 것은 우리가 준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처할 시간이 없었던 그레이스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게 되고,

폐인처럼 힘든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필자는 영화를 보면서 에드워드에 마음에 대부분 공감이 갔지만,

본인만 헤어짐을 준비하고 상대방에게는 갑작스럽게 이별 통보를 하는 모습을 보며,

그러한 그도 그녀 못지 않게 참으로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 행복했던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

그런 상대방에게 그가 고한 이별의 방식은 참으로 이기적이기 그지 없었다.

 

그러면서 영화는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즉, 올바른 작별에 대해서 말한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행위'를 뜻한다.

이 말은 즉슨 갑작스럽게 헤어짐을 '겪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해 헤어짐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헤어짐을 겪는다는 점에서 두 가지 모두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작별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현재에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누구나 헤어짐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상대방은 언젠가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며 행복하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 상대방에게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최후의 사랑 표현은 '작별'일 수도 있다.

이기적으로 모든 것을 갑작스레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이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야말로,

그렇게 그 관계에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사랑은 아닐까

 

영화에서 그들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는

사랑과 행복

이별과 작별

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그 모든 것이 참으로 이해되었다.

 

가장 공감되었던 '아들 제이미'의 시선

 

앞서 말한 영화에서의 감정선과 주제에 대해

우리는 노부부의 아들인 '제이미'의 시점을 따라가며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이입이 됐던 인물은 제이미였다.

필자도 제이미처럼 집안의 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서로 다른 가치관의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삶과 행복, 사랑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참으로 나와 비슷한 점이 많구나 느꼈기 때문이랴.

영화의 순간순간마다 '내가 제이미였다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을텐데' 싶었던 것들을

제이미는 영화에서 정말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제이미의 시선을 좇아가며 노부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제이미의 감정을 가장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배역을 연기한 '조쉬 오코너'라는 배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당연히 '빌 나이'와 '아네트 베닝'의 훌륭한 연기가 돋보였지만,

만약 영화에서 제이미가 없었다면 영화는 다소 밋밋한 노부부의 이야기 정도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에 아들 제이미가 있음으로써

에드워드와 그레이스의 생각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조쉬 오코너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참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제이미의 역할은 관객으로 하여금 제 3자로서 그레이스와 에드워드의 모습을 좇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담백하지만 감정적으로 충실한 그의 연기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된 연기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분명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순간들도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영화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그레이스와 절벽 계단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자세하게 이 장면을 묘사하면 스포일러가 되기에 최대한 간략하게만 표현하자면

이 장면에서 그레이스와 제이미는 '헤어짐'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제이미는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말하며,

그렇기에 자신은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헤어짐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그레이스에게 말한다.

이 장면이 주는 감동은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헤어짐이라는 것에 대한 제이미의 관점은

평소 필자가 갖고 있던 관점과 많이 닮아있기에 더욱 그 장면이 와닿기도 했지만,

뭐랄까... 그간 제3자로서 부모 사이에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바라보던 제이미가

이 장면에서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그레이스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그 순간은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슬픈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포함하여 영화에서 보여지는 제이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 많은 것들을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한 노부부의 슬픈 이별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끔 만드는 이 영화만의 힘은

어쩌면 아들은 제이미로부터 발현된 것은 아닐까?

 

영화가 시적일 때 나타나는 우아한 아름다움

 

영화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시를 엮은 책을 만드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시'는 인물들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현재 상황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마차에서 떨어져 버려진 부상병들에 대한 시를 통해

아내 그레이스에게 이별을 선고하기 전 에드워드의 긴장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원래 시라는 것이 작가의 감정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독자에게 더욱 감정적으로 효과적인 전달을 가능케 하는 것 아닌가.

그러한 시를 영화에서는 시의적절하게 상황마다 잘 사용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더욱 정서적으로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특히 가장 인상에 깊게 남은 시는 영화 엔딩 부분에서 제이미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각각 남기는 헌정 시였다.

이 또한 자세하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제이미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에게 어떠한 감정을 갖고 있는지,

그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시로서 표현한 것이다.

그 무엇보다 인물들의 변화되는 감정선이 가장 중요한 이 영화에서,

그러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매개체로서 '시'를 선택한 이 영화에서,

그러한 영화의 엔딩으로서 최고의 엔딩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훌륭한 마무리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레이스와 에드워드, 제이미는 변화하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인물들의 변화와 감정선을 효과적이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기 위해

영화가 선택한 '시'라는 매개체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행복과 작별에 대한 정말 아름답지만, 씁쓸한 시 한 편을 영화화한다면

딱 이런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필자는 문학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문학적이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영화는 언제라도 다시 시간을 내어 보고 싶어지는,

아니, 읽고 싶어지는 그러한 영화였다.

 

 

 

 

(쿠키는 없다.)

2022.03.22 메가박스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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