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벤느망, 개인적인 한줄평과 별점 (스포 X)

2022. 3. 23. 14:43현재개봉작 별점과 한줄평

세상의 편견 속에서 홀로 몸부림친 그녀를 누가 감히 비난하랴

 

별점 : 4 / 5

(제 기준 3.5점이 중간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볼까말까 조금 고민했다.

필자는 뭐랄까 민감한 주제를 적나라하고 직설적으로 다루는 영화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데,

딱 이 영화가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라고 하니

분명 작품성은 검증된 작품일 터, 작품이 상당히 궁금했다.

 

'낙태'라는 민감한 주제, 그리고 매우 적나라한 묘사

 

일단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낙태'라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여전히 큰 논란을 야기하는 주제이고,

이것에 대해 여러가지 찬반 입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낙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포스팅에 담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밝힌다.

그저 이 영화에서 이러한 주제를 어떻게 다루고 그려내고 있는지

이에 대한 인물들의 주관과 언행이 어떠한지, 그것에 대해 필자가 어떤 생각인지

에 대해서만 딱 언급할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필자가 단순히 이 주제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라고 생각은 하지 않아줬으면 한다.

 

영화는 '낙태'라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것을 생각보다 매우 적나라하고 과격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공포영화를 보듯이 몇몇 장면에서는 눈을 살짝 가리면서 볼 정도였으니

분명 아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런 류의 영화는 아니었다 생각한다.

 

'낙태'를 다루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아이를 낳는다는 선택지를 아예 배제한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당차게 걸어나가던 그녀에게

의도치 않은 '임신'은 '신의 축복'이 아닌 '내 앞날을 막을 장애물'이라는 인식에 가깝다.

영화를 보다보면 그녀가 왜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임신에 대한 그녀의 인식은 사실 꽤나 냉정하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의 미래와 꿈을 중요시하는 그녀의 생각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그렇다고 또 어떻게든 낙태를 하려고 하는 그녀의 행동에 묘한 이질감이 든 것도 사실이니.

영화를 보면서도 내가 어떠한 감정에 더 힘을 쏟아야할지 참 어려웠다.

하지만 영화 내내 진행되는 사건, 과정, 주변 인물들과의 과정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마음에 동조되고, 그녀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분명 필자만이 느꼈던 감정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임신을 계기로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무척 눈길이 갔다.

일단 우리는 이 영화가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시 프랑스는 낙태가 불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낙태에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기에

낙태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가치관이 현대와는 분명 다르다.

아이를 가지게 되면 선택의 여지 없이 나아야한다거나

낙태는 정말 농담으로라도 말하면 안된다거나

하는 말들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있었는지를 영화에서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다.

 

여성인 자신의 몸에 대한 일임에도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에 제약이 있는 사회에서 사는 주인공은

임신을 계기로 주변인물들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이 달라짐을 느끼면서

이 불합리한 환경 속에 홀로 남겨져 사투를 벌이게 된다.

그녀의 외로운 사투를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많은 감정을 소비하게 한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자신마저 점점 변화를 겪으면서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과 두려움은 2022년을 살고 있는 한국의 남성으로서는 감히 이해한다는 표현조차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그녀의 감정을 관객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는 매우 적나라한 묘사를 보여준다.

정말 적나라하다.

이렇게 직설적이고 다소 폭력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영화적 표현은 실로 간만에 본 듯한 정도였으니.

이런 거친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분명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필자는 영화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심각한 사회문제로 언급되는 주제를 관객에게 똑바로 전달하는데에

어중간하고 순화된 표현은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해당 당사자들은 얼마나 비참하고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

가감없이 보여줘 관객들로 하여금 정말 조금이라도 그들을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러한 영화의 중요한 하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적나라한 묘사는 분명 불편하기도 했지만, 필수불가결하기도 했다.

 

그녀는 무엇을 그렇게나 씻어내고 싶었을까

한, 과연 지금의 사회는 과거와 그렇게나 다를까

 

샤워실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서있는 왠지 외로운 그녀의 모습

계속해서 바다의 더 깊은 곳으로 전진해나가려는 그녀의 모습

영화는 끊임없이 물과 함께 있는 그녀의 모습을 비춘다.

그녀는 과연 무엇을 씻어내고 싶었던걸까?

 

보통 우리는 샤워를 하면서 단순히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머리와 마음에 있는 잡다한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을 같이 씻어낸다고들 한다.

아마 예상컨대 그녀는 그녀가 갖고 있던 깊은 불안, 외로움, 두려움을 씻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이렇게 있다보면 그녀의 뱃 속에 있던 태아를 지워낼 수도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고립되어가는 그녀에게 어쩌면 유일한 기댈 곳이 물 속은 아니었을까

누구보다 외롭고 무서웠을 그녀를 조금이나마 지탱해준 것이 사람이 아닌, 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녀가 처해있던 현실이 얼마나 냉담했는지를 우리는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냉정한 현실은 지금에 와서는 많이 달라졌을까?

글쎄... 이것은 남성인 내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1960년대의 보수적인 사회와 현재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낙태는 더 이상 불법이 아니고,

마냥 쉬쉬할 것이 아닌, 사회의 수면 위로 올라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논제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 저 상황에 처해진 사람들의 감정까지 달라졌을까?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두려움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과 태도

그들을 둘러싼 실질적인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 깊은 곳에서는 낙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그것을 고민하는 당사자를 죄인 취급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고,

그들을 알게 모르게 뒤에서 비난하며 손가락질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낙태라는 행위 자체를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안' 또한 다소 무책임한 쾌락을 누리다가 결국 임신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책임한 태도와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한 비판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분명 '안'의 행동에 잘못된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적인 옹호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은 채 우리가 그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영화의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안'을 응원하고 있던 사람들은

꽤나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녀가 처한 현실과 주변 환경, 그녀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부로 그녀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먼저여야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경청보다는 비난이 항상 앞서있다.

 

생명에 대한 윤리성과 신체적 자기결정권.

무엇이 먼저일까

 

생명에 대한 윤리성과 신체적 자기결정권 중 무엇이 먼저냐

이것에 대한 견해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침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스터에도 써있듯이 이것은 '그녀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다.

누군가에겐 생명에 대한 윤리성이 더욱 우선되는 가치일 수 있듯이,

누군가에겐 신체적 자기결정권이 더욱 우선되는 가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더 우선되어야하느냐를 따지기보단

그 무엇도 똑같이 존중받아야한다가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내 의견과 다른 너의 의견은 틀렸어'가 아니라

'내 의견만큼이나 너의 의견도 일리가 있구나'가 맞는 생각이 아닐까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며 갖게 되는 가치관은 모두 다 다를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이 항상 다 옳은 것도, 항상 다 그른 것도 아닐 것이다.

단지 다른 가치관이 존재할 뿐.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이 절대 선이라고 믿으며

나와는 다른 모든 가치관을 배척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인정하는 척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들의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영화는 단지 주제를 낙태로 정했을 뿐.

영화는 그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벼운 마음으로 볼 영화는 분명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영화를 보고나서 불편하고 찝찝한 감정이 마음 언저리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우리가 꼭 봐야하는 그러한 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단순히 '낙태'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주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상의 우리 사회에게 던지는 여러가지 무거운 시사점이 영화에 드러난다고도 생각한다.

 

본인이 적나라한 묘사에 거부감이 없다면,

한번 꼭 이 영화를 보길 감히 추천하는 바이다.

 

 

 

(쿠키는 없다.)

2022.03.22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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