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 개인적인 한줄평과 별점 (스포 X)

2022. 3. 26. 03:49현재개봉작 별점과 한줄평

흑백으로 남은 그때를 추억하며.

흑백 속에 남겨진 그들을 추억하며.

 

별점 : 4 / 5

(제 기준 3.5점이 중간입니다.)


흑백으로 된 북아일랜드판 '미나리'?

 

영화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딱 이것일 것이다.

영화는 1960년대 북아일랜드에 있었던 종교분쟁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노동자 계급 가정의 아들 '버디'의 시점으로 그려낸다.

변화되는 환경 속에서 한 가족이 어떠한 사투를 벌이는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아이의 시점으로 그려낸다거나,

영화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거나 하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다만 흑백영화, 국적의 차이만 있을 뿐.

영화 '미나리'와 흡사한 점이 많아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미나리'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은

영화 '벨파스트'는 영화의 배경에 1960년대 북아일랜드 분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버디'를 알며 좋아하고 있고,

'버디' 또한 그들을 모두 알며 좋아하고 있는

너무나 평화롭고 사랑과 온정이 넘치는 동네에서

정말 방금까지도 친구와 골목길에서 칼싸움을 하고 있던 버디는

집을 가는 길에 매우 난폭한 천주교 박해 폭동을 눈 앞에서 보게 된다.

그 사건을 계기로 버디와 그의 가족, 더 나아가 동네의 모든 것은

이전과는 너무도 크게 달라진다.

 

영화는 계속해서 9살 버디의 눈으로 영화가 진행되기에

당연한 얘기지만 버디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된다.

세계사 기록될만큼 엄청난 격동의 분쟁 속에서도

버디에겐 그저 똑같이 지내오던 하루하루였던 것이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와 잘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웃음 짓고,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근처에 살고,

예전과는 사뭇 골목의 풍경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이웃들과 유쾌한 관계를 잘 유지하는 등

분쟁이고 나발이고

버디에게 벨파스트는 그저 여전히 사랑하는 자신의 '집'인 것이다.

부모님이 벨파스트를 떠나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고민하는 것과는 다르게,

9살 소년에겐 이 동네를 떠나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버디에게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종교분쟁보단

어떻게 해야 짝사랑하는 아이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뭐라고 말을 붙여야 좋을까

그녀와 어떻게 하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자고 일어나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어있으면 좋겠다가 인생에서 더욱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 버디가 몰래 부모님의 말다툼을 듣고,

뭔지 모를 편지를 받을 때마다 엄마의 표정이 슬퍼지고,

불량배 같은 이웃은 계속해서 아빠와 가족을 압박하는 등

이전과의 삶과는 다른 삶을 지켜보며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그 어린 나이에 종교가 어떻고, 분쟁이 어떻고는 잘 모르지만,

종교와 관련된 어떤 무엇인가 때문에

자신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받고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9살 버디에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수 많은 명장면들과

상반기, 아니 어쩌면 올해 최고의 엔딩씬

 

영화에는 지금도 필자 기억에 남는, 가슴을 울린 명장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버스 안에서 버디의 엄마가 버디의 아빠에게

이주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벨파스트에 살며 어린 시절 남편을 만나고 결혼까지 하고

아이를 낳아 한 평생을 이 곳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 다른 나라로의 이주는

한 가족의 엄마로서,

벨파스트의 주민으로서,

아니 그저 한 명의 북아일랜드인으로서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불안함에 대해

이주를 원하는 남편에게 고해성사하듯이 털어놓는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또, 필자는 이 영화에서 버디의 '할아버지'의 존재감이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의 성장물 같은 영화에는

으레 아이에게 지혜를 전달하는 역할로 할아버지나 할머니, 삼촌 등이 나온다.

'벨파스트'에서의 할아버지 또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뭐 사실 좀 뻔하다면 뻔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이지만

아이가 갖고 있는 (그에겐 심각하지만) 귀여운 고민들을

재치 있고 지혜로운 조언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영화에서 감동적이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버디의 수학문제를 도와주는 할아버지의 장면을 통해

지나친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점에서 참 좋은 장면이었다.

영화에선 자신의 뚜렷한 가치관을 맹목적 신뢰를 갖고,

자신과 다른 모든 가치관을 '악'으로 규정하는 이들을 '악'로 규정한다.

그런 영화적 바탕에서 버디는 할아버지에게 수학 문제의 답을 물어보는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1과 7을 헷갈리게 쓰면 된다.'는 대단한 묘수(?)를 알려준다.

'하지만 답은 하나인걸요?'라고 되묻는 버디에게

'그렇다면 밖에선 저 난리가 나지 않겠지'라고 할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지.

답이 하나뿐이라면 왜 거리에선 천주교와 개신교도들이 분쟁을 벌이고 있었을까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갖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덕목이지만,

확고한 가치관이 맹목적인 이분법적 사고로 변모하여

자신만의 세계에서 다른 이들을 멋대로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어쩌면 감독은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하면서벨파스트에 대한 그리움, 부채감을 표현함과 동시에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제목에도 적혀있듯

필자는 '벨파스트'의 엔딩씬은 상반기 최고의 엔딩씬임과 동시에

어쩌면 올 한해 최고의 엔딩씬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관적으로 생각한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필자는 진심으로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엔딩 장면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진 않을 것이다.

버디의 할머니인 '주디 덴치'가 카메라에 클로즈업으로 잡힌 상태에서

나오는 그 엔딩씬은... 뭐랄까...

그것이 현실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저 버디 상상 속의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할머니가 자신의 가족에게 갖는 그 감정,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그 상황에서 할머니 개인이 겪는 그 감정,

또 한편으로는 벨파스트라는 지역에 갖는 감정.

이 여러가지 여성으로서, 할머니로서, 주민으로서 갖는 이 감정을

그 짧은 엔딩 장면에서 정말 파괴력있게 보여줬다고 느꼈다.

 

'주디 덴치'라는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뭐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이번 아카데미에서 그녀가 '엄마' 역의 '카트리나 밸프'를 제치고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다.

필자도 왜 공동 노미네이트가 아닌지 참 의문이다.

하지만 이 엔딩씬을 포함한 전체 영화에서 '주디 덴치'가 보여준 존재감을 보면

또 이해가 마냥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감독 '케네스 브래너'의 정점이 될 수도 있는 작품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감독은 우리에게 배우로도 너무나 유명한

'케네스 브래너'이다.

사실 필자는 '배우 케네스 브래너'는 좋아하지만

'감독 케네스 브래너'에 대해서는 다소 불신이 있다.

그를 감독으로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린 데뷔작 '헨리 5세'는

아직 필자가 못했기에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후에 '토르: 천둥의 신',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과 같은 영화를 보면

'아, 이 감독이 스펙트럼이 참 넓구나. 근데 영화는 좀 못 만드는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건 필자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당연히 역량이 있는 사람이지만,

뭐랄까... 그냥 배우를 좀 더 해줬으면 하는 바람? 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이번 '벨파스트'는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실제 자신이 겪었던 자전적 이야기들을 영화 속에 아주 다양하게 담아낸 그는

앞서 말했듯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고향 벨파스트에 대한 부채감과 미안함을 갖고 있던 감독이

자신의 애정을 담아 벨파스트에게 보내는 헌정 영화같은 느낌이었다.

 

감독은 영화에 최대한 사실감을 부여하려고 한다.

초콜릿을 훔치다가 걸린 일,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여자아이를 짝사랑한 일 등

실제 감독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영화에 자연스럽게 삽입하고,

영화 '벨파스트'에 나오는 영화들도 실제 그 당시에 개봉한 영화들이었고,

감독 뿐 아니라 출연진 대부분이 실제 북아일랜드 출신이기도 하다.

 

실제로 벨파스트 지역에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를 보고나온 케네스 브래너 또래의 중년들이

많이들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참으로 일상적인 벨파스트의 풍경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분쟁이 감독인 캐너스 브래너에게, 또 벨파스트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평화롭지만 강렬하게 담아낸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대부분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버디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연극을 볼 때 만큼은 컬러로 장면이 연출된다.

 

우리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아 그때 뭐 그런 일이 있었지.' '그때 가족끼리 크리스마스를 재밌게 보냈지' 수준으로

흐릿한 흑백과도 같은 장면 장면들로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버디도 당연히 자신의 어린 날의 일상은 흑백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버디에겐 커다란 종교 분쟁 또한 그저 어릴 적 흑백 추억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자신이 가족들과 함께 봤던

'치티치티 뱅뱅', '공룡 백만년'과 같은 영화는 얼마나 달콤했기에

흑백 속의 그 시절에서도 유난히 그 순간만큼은 컬러로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어른으로 자란 버디는 어쩌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흑백 속에 남겨진,

흑백을 떠나온,

흑백 속 어딘가에서 행방불명된 모든 이들을 위해.

 

 

 

(쿠키는 없다.)

2022.03.25 메가박스 킨텍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