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 로맨스, 개인적인 한줄평과 별점 (스포 X)

B급 코미디 같은 예고편에 속지마세요
훨씬 괜찮은 영화예요
별점 : 3.5 / 5
(제 기준 3.5점이 중간입니다.)
2019년 가을, 난 이 영화가 개봉하면 무조건 보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왜?
2019년 가을학기, 글쓴이는 리투아니아 빌뉴스 대학교 교환학생을 갔었다.
내가 지내던 올란두 기숙사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있던 한 광장에서 한 한국인 무리가 웅성웅성 대는 것을 보고
'오 여기에 한국인 관광객이 다 있네? 어떻게 리투아니아를 알고 오신거지?'싶은 생각에 흥미롭게 잠깐 구경을 했다.
근데 자세히 보니 이 사람들은 관광이 아니라, 뭔가 촬영을 준비한 듯한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사실 한국에서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는 다소 낯선 국가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한국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유명한 배우는 여기 없겠지?'라는 생각도 가졌었다.
근데 웬걸, 저기 근처 커피숍에서 매우 익숙한 비주얼의 중년이 야외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화의 주인공 '류승룡' 배우님이셨다.
'하하, 이 안 알려진 나라에 한국 촬영팀이 온 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배우가 류승룡 아저씨야?!'
너무나 신기한 마음에 바로 달려가 아는 척을 하고 싶었으나, 뭔가 민폐를 끼칠 것 같아 주변에 있던 관계자분께 먼저 말씀을 드렸더니, 친절한 여성 관계자분께서 배우님께 나의 존재를 귀띔해주셨고, 배우님은 나를 불러 굉장히 젠틀하게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시며 이 영화 얘기를 해주셨다.
"제목이 '입술은 안돼요'라네요, 12월에 개봉해요 ㅎㅎ"
"앗, 개봉하면 꼭 보러갈께요!! 파이팅하세요!"
하며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는 내 할 일을 하러 택시를 타고 갔고, 그렇게 굉장히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더랬다.


그렇게 영화는 뭐 내부사정이 있었는지 개봉이 늦춰졌고, 영화의 제목이 '장르만 로맨스'로 바뀌고, 2년이 지난 지금에야 한국에서 개봉을 하였다.
내가 어찌 이 영화를 안 보겠는가. 그냥 바로 달려갔다.
나한텐 다양한 추억이 많은 리투아니아 빌뉴스가 영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서.
나의 하루를 근사하게 만들어준 류승룡 아저씨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지금까지 개인적인 얘기를 너무 길게 썼다 ㅋㅋㅋ
이제부턴 영화 얘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영화 예고편만 보면 정말 진부한 한국식 B급 코미디 영화 냄새가 솔솔 난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추억이 있었음에도, 예고편만 보고 너무 영화가 별로일거 같아서 영화를 보러 가는걸 주저할 정도였으니.
개인적으로 그 특유의 오그라드는, 클리셰 범벅의 한국 영화를 매우 선호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라면 아마 예고편만 보고 이 영화를 보러가는걸 포기한 사람도 없진 않으리라 감히 예상한다.
그러나 결론만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예고편을 다시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좋은, 깊은 주제의식을 예고편은 정말 털끝만치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예고편과 달리, 본 영화는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 3.5점은 딱 Not Bad에 속하는 점수지만, '장르만 로맨스'는 Good에 가까운 3.5점이다.)
영화는 한물 간 유명작간 '김현'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죽마고우, 이혼부부, 비밀커플, 이웃사촌, 스승제자, 성소수자 등 실로 다양한 '관계'가 계속해서 부각된다.
그 관계 속에서 인물들은 싸우고, 상처받고, 치유받고, 위로받으며 조금씩 성장하게 된다.
특히, 영화에서는 '김현'과 '유진'의 관계를 가장 비중있게 다루고, 그 둘은 개인적으로도 가장 인상깊은 '관계'였다.
성격, 지위, 가치관 등 많은 것이 다른 현과 유진은 모종의 이유로 동거를 하며, 책을 공동집필하며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되고, 이러한 두 인물을 통해 관객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한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현실의 우리 또한, 실로 다양한 '관계'속에 얽혀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얉지만 넓은 관계를 선호하고, 누군가는 깊지만 좁은 관계를 선호한다.
얉고, 깊고, 넓고, 좁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분노하고, 즐겁고, 사랑하고, 상처받는다.
결국 어떤 관계이건, 그 관계가 어떻게 끝나던, 그 관계가 일시적이던 영구적이던
우리는 그 속에서 뭔가를 느끼고 배우면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고, 한층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본다면 이 세상에 가치없는 관계는 없는 듯 하다.
뭐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이 영화는 관객에게 '관계'라는 이름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 각자 나름의 정의와 해석을 생각해보고,
관계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라고 넌지시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냥 가벼울거라 생각했던 영화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은 주제에 대해 '코미디'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인에게 '장르만 로맨스'라는 영화를 분명 추천할 수 있을 듯 하다. (실제로 지금도 추천하고 있고)
영화에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의 아들로 나오는 '김성경'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짙다. (배우나 연기력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미리 밝힌다)
'성경'은 모종의 일들을 겪으면서 중년의 '현'과 달리, 소년의 관점에서 '관계'에 대한 정의와 가치를 역설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또한,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코미디'스러움을 가장 짙게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근데 뭐랄까... 이 영화 속에서 '성경' 혼자만 따로 노는 듯한 캐릭터로 존재했다는 느낌을 난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사춘기를 겪고 있는 고등학생이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강도는 성인의 감정보다 더욱 강렬할 것이다.
글쓴이 또한, 고등학생 때 '관계'란 것 때문에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던 사람이었기에 '성경'이란 인물의 불타오르는 감정은 분명히 공감한다.
하지만...'성경'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그의 언행의 인과가 다소 이해가 되지 않거나 뜬금없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고, 캐릭터 자체가 좀 오그라드는 부분도 있었고,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이긴 하지만, '성경'이라는 캐릭터만 홀로 과하게 '코미디!!!'를 외치며 다소 억지스러움을 주는 느낌도 있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성경'이 영화의 전체적인 궤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로 소비되었다는 아쉬움,
'성경'이라는 한 고등학생이 보여주는 '관계'의 가치를 더욱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은 분명 존재한다.
(영화 끝나자마자 짧은 쿠키 1개)

2021.11.17 CGV 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