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개봉작 별점과 한줄평

화양연화, 개인적인 한줄평과 별점 (스포 O)

평론가 코스프레 2022. 3. 11. 06:26

사랑의 파편들을 꾹꾹 눌러담아 영원한 추억으로 꽃피우다.

 

별점 : 4 / 5

(제 기준 3.5점이 중간입니다.)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화양연화'를 개봉한지 22년이 지난 지금에야 보게 되었다.

'화양연화'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수작으로 꼽힐 뿐 아니라

중화권, 더 나아가 전 세계 로맨스 영화 중에서도 극찬을 받는 명작이기에

그만큼 오랜기간 많은 평론가, 리뷰어, 팬들에 의해 다양한 후기, 평론, 분석 등이 이미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영알못 필자가 '화양연화'에 대해 분석을 하는 것은 다소 불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대한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리뷰를 원한다면 유튜브나 다른 블로그의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리며,

스토리와 연출, 연기력, 음악, 미장센 등 영화의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는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이미 개봉한지 22년이 지났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봤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번 포스팅에선 스포일러를 포함하여 더 구체적인 감상평을 쓰고자 한다.)

1. 스토리와 마법같은 연출

 

엄밀히 말해서 이 영화의 스토리가 아주 특별하고 독창적이진 않다.

자신의 배우자가 옆 집의 아내, 남편과 혼외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두 남녀('양조위', '장만옥')은

어쩌다 자신의 배우자가 혼외관계를 갖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어 그들의 불륜 과정을 연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은 실제로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며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결국 둘은 이별을 하게 되고,

그렇게 둘의 사랑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한 채 화양연화로만 남게 된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이러한 스토리가 유난히도 아름답고 애틋하게 보였던 이유는

영화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연출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국수를 사러가는 좁은 계단에서 스쳐지나가는 인물들의 야릇한 분위기

이별을 연습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만옥, 그런 그녀를 위로하는 양조위를 둘러싼 애틋하고 씁쓸한 감정

신과 신 사이를 의도적으로 제거하며 그들의 사랑을 파편화하여 보여주는 연출

인물이 떠난 후, 텅 빈 공간과 장소를 길게 비추며 보여주는 공허함

이중프레임으로 담아내는 인물의 모습 등

 

'화양연화'는 다른 여타의 로맨스 영화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은 연출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둘의 사랑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스킨십 장면이 거의 없지만 섹슈얼한 분위기를 너무나 잘 연출한다는 점이다.

그 흔한 키스신조차 없다.

가장 수위 높은 스킨십이 고작 손을 잡거나, 어깨에 얼굴을 묻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다른 웬만한 로맨스 영화보다

두 남녀의 감정이 더욱 애틋하고, 야릇하고, 절절하게 느껴진다는게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멜로영화인 '캐롤'에서도 노골적인 스킨십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

그에 비해 적나라한 애정씬이 전혀 없었음에도 그들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영화가 얼마나 두 남녀의 관계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히 표현하는데 성공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확히 영화 속 특정 연출이 어떤 감정과 주제를 보여주고자 했는지를 정확하게 필자는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왕가위 감독의 세련되고도 정제된 연출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서사와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는 점이다.

2. 배우 양조위, 장만옥의 압도적인 연기력

 

영화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상 '화양연화'는 양조위, 장만옥 두 배우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꽉 채워진 영화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

왕가위 감독의 훌륭한 연출이 있었음에도 만약 다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감정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겠지만

과연 영화 특유의 아름답고도 처연한 분위기가 잘 나왔을지는 의문이다.

그만큼 그들의 눈빛, 손짓, 표정은 '단순히 연기를 잘했다' 수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줬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이별 연습 신에서의 장만옥의 연기가 영화의 백미가 아니었나 싶다.

하 진짜...

그 순간에는 내가 장만옥이 된 것 마냥 아주 씁쓸하고 슬픈 감정이 영화로부터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겠다며 이별을 고하고 떠나가는 양조위가 결국 잡은 손을 놓았을 때,

그 순간 어디에 두어야 모르겠는 장만옥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 자리에 계속 멈춰있다가

결국 그 손을 자신의 반대 쪽 팔로 가져가며 자신의 팔을 쓰다듬는,

그러면서 자신의 폭발하는 그 감정을 정말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장만옥의 표정은 정말이지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결국 연습을 중단한 후, 양조위에 안겨 서글프게 우는 장만옥과

이 모든 것은 연습일 뿐이라며 위로하지만 이별을 결심한 채 허공을 바라보는 양조위의 눈빛은

필자에게 영화의 최고의 한 순간으로 남게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영화에서 두 배우의 감정 표현이 격해지는 순간은 거의 없다.

가장 격한 감정 표현이 앞서 언급한 이별 연습 신에서의 장만옥의 울음 정도?

두 인물의 감정과 시간에 따른 감정 변화가 두드러져야 하는 영화에서

순간의 표졍과 눈빛으로 그것을 표현한다는게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음식을 먹으며 보여주는 공허한 모습, 
배우자의 외도사실을 안 순간의 눈빛,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진심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때의 표정,

상대방을 정말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 등

영화는 시종일관 절제된 표현을 유지하지만 그 속에서 분명한 인물의 변화가 느껴지고,

표현을 과하게 했을 때보다 더욱 그 감정을 잘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두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3. 시청각을 만족하는 미장센과 음악

 

흩날리는 호텔 복도의 빨간 커튼,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두 남녀가 먹는 죽과 국수 등

영화에는 관객의 시청각을 만족시킬 뿐 아니라, 영화의 질감을 탁월하게 표현하는데

다양한 미장센과 음악, 의상 등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 필자는 영화의 음악과 장만옥의 치파오에 대해서 꼭 언급을 하고 싶다.

일단 영화에 사용된 음악 중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Yumeji's theme'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 곡은 워낙 익숙하기도 해서 그런가 영화 속에서 나올 때마다 나를 때리는 듯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뭐랄까 그 신에서 보여주려는 감정을 더욱 심화시키는 느낌?

 

특히, 국수 가게로 가는 좁은 계단에서의 신에서의 이 곡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이 장면은 유난히도 나에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두 남녀가 국수를 사러가는 그 좁은 길목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정말이지 평범하고 생활내 나는 장면이

왜 그렇게까지 야릇하게 느껴졌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필자에게 가장 와닿았던 요소는 음악이었다.

낮은 음 1번, 높은 음 2번을 반복적으로 때리는 그 음악이 둘의 심장소리를,

이후의 가늘고 위태로운 듯한 선율은 평범한 이웃이었던

상대방을 사뭇 신경쓰게 되는 둘의 복잡한 내면의 변화를,

어쩌면 앞으로 두 남녀가 겪게 될 아름답고도 구슬픈 미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평범할 수 있었던 이 장면이 여러가지 의미로 보여질 수 있었던 데에는

사용된 음악의 힘이 상당히 컸다고 생각한다.

 

또한, 장만옥의 치파오에 대해서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다.일단 비주얼적으로 정말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장만옥이라는 배우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정말 아름다운 배우라는 것을 절감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치파오라는 의상과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배우를 처음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참 다양한 치파오를 아름답게 소화한 '화양연화'에서의 장만옥은 정말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치파오는 그때그때마다 장만옥의 감정을 보여주는 듯한 역할을 하면서

기술적으로는 신과 신 사이를 구별해주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2046호로 달려가는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의 장만옥의 치파오는 빨간색,

양조위와 이별 연습을 하면서 복잡해지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의 치파오는 보라, 분홍, 초록이 뒤섞인 색

이런 장면만 보더라도 우리는 치파오를 보면서

그녀의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 의도적으로 관객이 시간의 경과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끔 편집된 영화에서

관객은 그때마다 바뀌는 장만옥의 치파오를 보면서 신 사이의 시간의 경과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그냥 단순히 화려한 치파오를 통해 여주인공의 외형적 아름다움만을 표현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심경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서, 시간 경과를 시각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장치로서,

치파오라는 어쩌면 단순한 의복을 실로 다양한 장치로 활용하는 영화의 탁월한 연출에 감탄이 나왔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화양연화'는 내 인생 최고의 멜로 영화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필자 주관적 최고의 멜로 영화는 '캐롤'이며

그때 느꼈던 감동을 '화양연화'에서 그대로 느끼지는 못했다.

많은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에 극찬을 불러일으키는 그 정도의 전율을 필자가 느끼지 못한 데에는

필자가 영화에 함축된 다양한 감정과 의미를 파악하는데

영화에 대한 내공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영화는 단순히 별점 몇 점으로 평가할 수 없는 영화라는 것이다.

필자가 아직 느껴보지 못 한 감정, 경험해보지 못 한 순간을

마치 그런 경험이 있는 양 그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은

영화가 가진 마법과도 같은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나 싶다.

 

 

참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더욱 처연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화양연화였다.

2022.03.07 메가박스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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