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개인적인 한줄평과 별점 (스포 X)

아무리 힘들어도 이야기와 온전히 마주하기를,
그렇게 덤덤히 살아가고 위로받기를
별점 : 4.5 / 5
(제 기준 3.5점이 중간입니다.)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실로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봤다.
그런 나에게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감독은 더욱이 낯선 감독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것들이긴 하지만) 알고 보니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라 하더라.
근데 영화는 약 3시간의 매우 긴 런닝타임을 갖고 있었다.
원체 집중력이 아주 부족한 글쓴이는 영화가 2시간만 넘어가도 집중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지라
무려 3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그것도 어떠한 액션과 스릴러가 없는 영화를 (그것도 아침 9시부터)
올바르게 집중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걱정은 매우 불필요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정확히 179분이 걸렸다.

영화는 프롤로그부터 꽤나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내 '오토'와의 사랑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던 주인공 '가후쿠'는 어느 날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고,
그 이후 가후쿠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했던 아내 '오토'는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가후쿠에게 큰 상처가 된 이 사건을 40분이라는 꽤나 긴 시간동안 영화는 프롤로그를 통해 보여준다.
그 이후 약 2시간 20분간의 본편은 이 프롤로그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펼쳐진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 연극제에 초청되어 연극을 연출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건넴으로써
그가 갖고 있는 내면의 슬픔을 어떻게 마주하고 다뤄야하는지를 조금씩 깨달아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화는 '이야기'라는 것에 집중한다.
영화 속 연극에서 배우들은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와 같은 각 국의 언어, 심지어는 수어로 각자의 이야기를 해나가고,
영화의 주 배경인 차 안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주인공 '가후쿠'와 그의 운전기사 '미사키'가 자기 자신과의 이야기와 똑바로 마주하기까지
영화에서는 그 형태와 내용이 실로 다양한 '이야기'가 서로 정밀하게 엮여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내가 추측하기로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부터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
그렇게 덤덤히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위로받게 된다.'
가 아닐까
영화 속 가후쿠와 미사키가 과거에 큰 상처를 받고 그것을 외면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상처와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생각보다 더욱 어려워하고 두려워한다.
그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 더 이상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봐, 그 슬픔을 끝내 극복하지 못할까봐, 너무 고통스러울까봐
우리는 애써 괜찮은 척 그 상처를 외면하고 모른 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어떠한 연유에서건, 누구에 의해서건 겪었던 그 과거의 상처와 슬픔을 극복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음을,
그렇게 덤덤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며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위로받고 치유받을 수 있음을
영화 속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2022년 글쓴이가 본 2번째 작품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보는 것을 즐기는 글쓴이가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 내용을, 메세지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마 무리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느낀 바가 감독이 의도한 바와 크게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반드시 당신이 이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
꼭 보기를 바란다.
당신이 영화를 보고 나와 다른 것을 느끼던,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던 상관없다.
그저 이 영화를 통해 당신이 당신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감독의 조용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상영관이 적은게 아쉽다.
당신의 집 주변 상영관에서 꼭 이 영화가 상영되기를 바라겠다.
논외로, 영화에 나온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배우 '오카다 마사키'님, '박유림'님의 연기에 감탄했다.
'오키테가미 쿄코의 비망록'이라는 일본의 드라마를 통해 '오카다 마사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연기를 그냥저냥 하는, 그저 아주 훤칠하고 잘생긴 배우 정도로 인식했었다.
하지만, 영화 속 매우 핵심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차 안에서 가후쿠와의 나누는 대화 장면에서 그의 연기는 실로 인상적이었다.
단지 잘생겼을뿐 아니라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임을 그 한 장면에 압축하여 보여준 듯하다.
또한, 한국식 수어를 사용하는 '이유나'역을 맡은 배유 '박유림'님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수어'를 사용하여 영화 속 '유나'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그리고 연극 속에서 '소냐'의 이야기를 가후쿠에게 전달하는 연기는 단순히 입을 통해 대사로 전달하는 것 이상의 흡인력을 가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모든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 그리고 정밀하게 이야기를 조합해나가며 메세지를 전달하는 감독의 능력은
영화를 곱씹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함과 동시에, 이 감독의 전작들을 반드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왜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감독이 현재 일본과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하나인지 큰 호기심이 생기면서, 아주 약간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이었다.

2022.01.07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